창백한 언덕풍경

2014. 6. 2. 21:36 from 일지

다 읽을때까지도 감이 확 안왔는데 

뒤에 역자 해설에 가즈오 이시구로가 7살때 일본에서 영국으로 이주해 갔다는 글을 보고

뭔가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데뷔작이니 만큼 자신의 경험과 정체성,

가장 벗어날 수 없었던 생각들을 이야기로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스포





주인공 에츠코와 자살한 딸 케이코, 에츠코의 이웃 사치코, 그리고 그의 딸 마리코. 

이 네 사람은 마치 서로 대칭을 이루듯 일본에서 영국으로, 미국으로 건너간다(혹은 건너가려함) 

두 엄마 에츠코와 사치코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타국으로의 이주를 꿈꾸고 

그 과정에서 딸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급격한 환경변화에 맞춰 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에츠코와 사치코 두 어머니를 이기적이라고 봐야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작가는 변호라도 하듯 그녀들이 다른곳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유독 여성들에게만 잔혹한 일본의 현실을 담담히 서술해 나간다.

요즘 여성들은 두 손이 멀쩡히 달렸음에도 세탁기 타령을 한다는 둥,

남편이 지지하는 당을 찍지 않겠다고 해 매를 맞고서도 뜻 을 굽히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시대가 미쳐간다는 뉘앙스로 주고받는 노인들.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남자들.


가즈오 이시구로는 어린나이에 타국에서의 생활이 괴로웠을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케이코가 자살한 것처럼 그도 거기까지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를 탓했을 수도 있다. 납득이 가지 않았을테고 자신이 있던 나라와 어머니에 대해 알아보고 이

해해보려고 애를 쓰지 않았을까?

그리고 여전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소설속에서 삶이 너무나 궁핍해 갓난 아기를 물에 넣어 죽이는 어머니와 같이,

전쟁이 휩쓸고간 땅에서 보장 받지 못 할 삶을 자식의 안위만을 위해 계속 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괴로울 것이라고. 




어디까지나 추측일뿐이라 사실 여부는 모르겠음. ㅎㅎ


작년에 이 책을 막 읽기 시작했을 즘 일기에 이렇게 써 있다.


쓸데 없는 설명은 다 빼고 대강 점을 찍어

읽는이가 알아서 선을 그으며 유추할 수 있도록 쓰여진 시작부분, 

읽을수록 궁금증을 더해가는 구조가 너무 세련됐다. 이런 감각은 타고 난걸까 연마된 걸까.


그리고 오늘 책의 역자 후기에 이렇게 씌여있음.


이 책에서는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이 종종 더 중요하다. (중략) 

이렇게 문장보다는 행간으로, 언표보다는 침묵으로 말하기는 학습으로 얻어질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이 어둡고 신비로운 소설에 내재된 것은 문학적 계산이나 포석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히 분비되는 재능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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